학원의 미래
- 미스터 핀셋
- 2020년 2월 25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0년 5월 25일
장소의 의미
마켓컬리를 통해 아침 장을 보고, 배달앱으로 야식을 시킨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출간되면 지체없이 인터넷에서 결제한다.
은행 갈 일 또한 온라인 뱅킹을 통해 해결한다.
필요한 가구가 생길 경우 사진이 곁들어진 구매후기를 찾아본 뒤
침대에 누워 주문한다.
일처리에 필요한 커뮤니케이션도 카카오톡으로 대신한다.
대화 기록이 남아 때로는 더 정확하고, 면전에서 하기 곤란한 말을
전달하는데 요긴하다.
집으로 캡슐을 주문해 마시는 일상의 네스프레소 한 잔이
매번 커피숍에 찾아가 사 마시는 것보다 훨씬 더 저렴하고 간편하다.
그래서 더 합리적인 소비라고 생각한다.
정재승 KAIST 교수는 도시에는 이제 ‘필요해서 가야하는 곳들’,
‘기능을 수행하는 곳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말한다.
앞으로 우리에게 물리적 공간이란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해 있다.
디지털 공학이 선도하는 지금의 미래는 우리에게 막강한 편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비약적인 기술의 발전으로 이 사회는 상전벽해
테크노피아로 변모해 나가고, 물리적 공간에 찾아가 사람과 사람이
직접 대면해야 할 필요성은 점점 더 줄어든다.
더욱이 요즘같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출몰하여 세상이 어지러운 시기
사회적 거리두기는 인간을 구원하는 이상적 거리 개념의 좌표를
또 다른 각도에서 제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바로 그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해
특정 공간에서 서로 직접 대면할 필요가 사라지고 제약되는 현상은
현대의 분명한 한 단면이 돼버렸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 배경과
거대한 움직임 그리고 그 작용력은 동시에 우리를 더욱 사람에게
향하게 하는 역설 또한 빚어낸다.
디지털 테크노피아가 잃어버리게 만든 무엇을 되찾고 싶은
심리적 저항 혹은 정신적 향수라고 할까.
첨단의 유행이 돌 때 자연스레 한편으로 복고풍이 일어나듯이
물리적 대면을 제거하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 내음과 정(情)은
더욱 절실하고 중요한 삶의 요소로 다가온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처럼.
책과 영화는 인터넷으로 간편히 사서 보지만 그 감상을 보다 진하게
나누기 위해 마치 제의식처럼 특별한 시간과 장소를 모색한다.
영화 감독이나 저자와의 만남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이유는
작품이 아닌 그것을 만든 사람이 나타나서다.
커피숍은 커피 맛을 음미하는 행위를 넘어 주인 손길이 깃든
공간 고유의 개성과 분위기를 마시는 곳이 됐다.
마트에 가서 사람들과 부대 끼며 신선한 야채를 고르고, 물건을 직접
담는 재미와 감각은 온라인 주문으로 채울 수 없다.
와인 동호회, 어학 스터디 같은 갖가지 모임도 지식 공유 보다는
사람을 찾는 행위, 더 정확히는 나와 같은 취향을 가진 타인과
연대하는 행위에 가깝다.
사람들은 이제 ‘도시 속 장소’라는 의미의 기표 위에서 갖가지
단순한 필요를 채우게 하고 기능을 수행한다는 일차적 기의를 삭제 한다.
대신 집에서 고립된 생활로는 다 채울 수 없는
직접적 체험을 얻을 수 있는 곳,
적극적인 인간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곳
이 두 방향으로 의미의 무게중심을 옮겨간다.
그것이 미래 도시 속 장소가 갖는 부가가치의 핵심이며,
바로 그 연장 선상에 학원의 미래가 놓여 있다.
정보의 홍수속에 지식은 이미 찾으면 손닿는 곳에 놓여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접속만 하면 다양한 영어 콘텐츠가
차고 넘치며 왠만한 입시 강의는 온라인으로 연계된다.
그러므로 오프라인으로 굳이 찾아가 학원에 입장하는 일은
정보(information) 그 이상의 것을 가져다 주어야 한다.
What & How
오프라인, 즉 학원에서 선생의 역할은 지식의 전달자를 넘어
사람을 대면하는 감정의 복원을 위한 ‘놀이’와 ‘친구-되기’,
그 속에서 나아가 진정한 ‘스승-되기’로 전환해야 한다.
선생의 음성에는 지식(KNOWLEDGE)과 뉴스(NEWS)외에도
지혜(NEW VISION)가 담겨있어야 한다.
영어에서 ‘스승’을 뜻하는 ‘멘토’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오디세우스의 친구 멘토르(Mentor)에서 유래했다.
멘토르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출정하여 20년이 되도록
귀향하지 않는 동안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곁에서 돌보며 가르쳤다.
그의 이름은 ‘현명하고 성실한 조언자’
바로 ‘스승’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미스터 핀셋 학원이 추구하는 가치는 뚜렷하다.
미스터 핀셋 학원장이 걸어온 길도 분명하다.
우리가 쓰는 언어는 그저 일상의 회화수준에 머물 수도 있지만,
인간의 문화유산을 실어 나르는 위대한 예술이 될수도 있다.
영화와 철학, 미학과 예술을 공부하는 일은 그 지식의 최전선과
맞닿기 위해 서구 학계의 유서 깊은 이론 틀을 영문으로 섭취하는
일과 같다.
문화 사대주의의 관점을 잠시 비켜나가기로 한다면
학원장의 발자취는 <미스터 핀셋>이라는 공간을 지혜의 숲으로
주조해 나가는 근간이 되어 줄 것이다.
미스터 핀셋을 방문하는 학생들은
입시학원의 주목적인 성적과 영어실력 향상에 더해
인문학적 소양과 인성을 함양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디지털 사회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스승과 제자들이 얼굴을 직접 맞대고 지혜와 정을 나누는 공간,
나는 미스터 핀셋이 그러한 장소가 되기를 희망한다.
운양동 집 서재에서
미스터 핀셋 원장 김선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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